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 올바른 부모 의 모습

자녀의 부모에 대한 반감

한 번 갈아 엎어야 자기 생각이 생기고, 자존감이 생긴다. 좋다는 것도 그냥 받아들이면 자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어른도 있다.
뇌의 발달 면에서 보면 청소년기가 편도체의 발달시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때에는 감정을 다루는 편도체가 주도적이다. 그러나 규칙은 존재해야 한다. 규칙을 어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규칙은 올바른 부모, 자녀 모두 지켜야한다.

아이는 독립체이다. 놓아주어야 한다. 그 과정이 성장과정이다.

자녀의 행동 교정

몸이 컸다고 마음이 큰 것은 아니다.

교정을 하려면 한 번에 대하여는 태도를 버리라. 감정적으로 왜를 따지지 말라.
칭찬은 행동과 노력에 초점을 둔다. 야단보다 칭찬을 나중에 하라.

최고의 설득은 설득하지 않는 것이다. 지도자는 뻔한 말을 하지 않는다. 굳이 떠들면서 일을 완수하면 일반인은 스스로 했다고 믿을 것이다. 그게 이상적인 지도자이듯, 부모도 그렇다

권위를 스스로 만들려고 해봐야 실패다. 권위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부모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아이가 원하는 것을 먼저 파악하고 더 중시하자.

피해야할 부모의 감정

감정을 아래로 분출시키는 행동은 감정의 배설이다. 아이, 백화점 직원, 부하직원등. 감정은 폭발시칼 것이 아니라 다루어야할 것이다. 아이가 대상이 되면 아이도 다른 대상에게 분출을 할 수도 있고, 쌓을수도 있다. 모든 경우 문제이다.

기대, 실망, 창피, 패배감. 아이에 대한 것이건 스스로에 대한 것이건 기대 자체가 틀린 경우가 많다.

아이에 대한 실망, 아이로부터 무시를 받았다는 감정은 우월감에서 비롯된다. 무시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설정에서 기인한다.

부모의 역할

육아를 하면서 희생할필요 없다. 우선은 자신의 생활이 충족이 되어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사회생활이 안되어서 육아에라도 집중하는 보상식 마음가짐이어서도 안된다. 잘 해주되, 과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곁의 내가 아닌 내 곁의 아이이다. 모근 것은 자기 결정이고 자기 책임이다. 어떤 것도 탓하지 말라.

부모는 감독이지 대신 뛰어주는 교체선수가 아니다. 스스로 계획하고 달성해야 진정 행복한 아이가 된다. 격려와 도움이면 충분하다. 감독도 아니다. 이겨도 져도 응원단이다.

Optimal frustration with Good enough mom is the best experience.

뭔가를 자꾸 해주려는 마음을 지켜보며 버티는 자세를 갖자.
완벽해 보이려 애쓰는 것 보다 성실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인다.

자녀에 대한 기대와 실망

기대가 너무크면 안된다. 기대와 현실간의 공백이 크면 우울감, 우울감은 자신을 향한 공격성을 높인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아이에게 기대하고, 동일시 하면 더욱 고통이 커지고 아이에게 영향을 준다.

아이는 자기 위치를 안다. 부모마저 그것에 의해서 스스로의 행복에 영향을 받으면 아이도 부모도 상처투성이이다. 부모가 아이의 성적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삶을 못살고 있다는 뜻이다.

자녀, 부모의 자존감

자존감이 낮으면 타인의 칭찬을 열망하는 공허한 삶을산다. 자존심을 연기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센 경우 자존감이 낮다. 자존감과 자존심이 차이를 알아야한다. 자존감이란 내가 나를 어떻게 느끼는가 이다. 나만의 고유한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다. 타인과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자존심은 타인이 보는 나, 타인과 비교한 나이다. 외부의 인정과 칭찬보다 스스로 가치있고 당당한 존재라 여기는 것이 자존감을 키운다.

소냐 루보머스키의 행복활동.
노력을 통해 얻는 것. 그 노력이 스스로 선택한 것. 자신은 스스로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확신. 그 확신이 강할수록 외부에 휘둘리지 않는다.

목표를 너무 높게 잡으면 자존감이 낮다.

타인에 대한 비교를 하지말라. 남들 하는 만큼이라는 기준 자체를 버려라. 수백만원짜리 유모차가 평균이 된 걸 봐도 그렇다. 차도 그렇다. 보이는 모습에 집중할 필요 없다.
동양인은 남들보다 잘 했다고 하면 쉬려하고, 서양인 더 열심히 한다. 내 목표가 아닌 주변의 평균이 목표가 되는 현실이다.

습관형성

심리적 관성도 있고 전두엽이 25세까지 성장하므로 습관을 형성하기가 어렵다.

10대까지는 유아적이다 자아와 현실적 자아가 공존한다. 집에서는 편하게 싶어한다. 난데없이 유아적으로 행동하면 그냥 넘어가면 된다. 육체적 성숙에 압도당할 필요는 없다. 싸우려 할 필요도 없다.

10대들에게 친구의 의미.

또래 압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여, 공동 행위를 해야한다. 친구들로부터의 외적보상이 압도적이다. 친구들로부터의 인정이 가장 중요하다.또한 자기 부모를 과소평가하고 다른 부모를 과대평가 하기도 한다.

시간의 상대성

만 13세가 되어야 24시간을 이해한다.
슈테판 클라인은 기억해야할 것이 적을 수록 시간은 빨리 흐른다고 했다. 시간이 주관적이니 상대방과의 갈등의 소지가 있다.
부모는 너무 자녀를 옭매려 하지 말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면 아이에 대한 불안감이 적어진다.

말대꾸

청소년기에 회백질의 발달이 최고조에 이르고, 신경세포는 양적 성장과 시냅스 연결이 일어난다.
12세에 전두엽과 두정엽의 발달이 최고조 된다.
추상적인 것들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타인의 표정과 미세한 태도 등에 대한 변화를 감지한다.
이 때에는 논리적 추론 능력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호르몬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이 나오면 여성은 애착관련 옥시토신이 나오나, 남성은 아드레날린이 나온다. 여성은 대화하고 도움받으려 하나, 남성은 정면돌파 하려한다.

여아의 경우 호르몬의 영향으로 실제 우울증일 수 있다.

심리적 압박

마음의 에너지는 유한하다. 일상적인 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작업기억이 잘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작동을 못할 수도 있다. 뇌의 영역이 작아지는 것이다. 매일이 스트레스가 된다. 최선주의자들은 최선이 아니면 불행할 수도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슈드비 (should be) 컴플렉스.
해야할 일들에 압도되어 만족을 모르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할 일들 사이에서 허둥대며 여유 자체를 퇴보로 여긴다. 만족에 죄책감.

잠은 필요한 것

렘수면 동안 배운 것을 학습한다. 시험기간에 렘수면이 많다. 잠을 자지 않으면 각성을 유지하느라 해마에 에너지가 가지 않아 다음 날 단순한 기억도 잘 안 된다. 자는 동안 단편적 지식이 엮인다. 깨어난 4시간 후 최고 집중력.

놀이는 절대적인 것

어릴 때부터 가족 단위의 시간을 많이 보내야 놀줄알게 된다. 잘 노는 사람이 창의적이다. 현대는 창의력의 시대이다.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달성 계획을 세우는 능력이 있어야 놀줄 알게 된다. 몰입은 신경적 육체적, 두뇌 신체는 극도의 활성화되고 자시 능력의 최대치에 도전한다.
잘 놀아 몰입을 해봐야 공부에서도 몰입을 하고, 일에서도 재미있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

진정한 여유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공부와 놀이의 균형이 있어야 행복을 알게 되고, 십대시절 행복을 느껴봐야 성인이 되어서도 만족감과 성취감을 잘 느낀다. 어릴 때 놀아봐야 여유와 휴식을 스스로 찾는다.

전두엽이 덜 발달하면 산만한게 당연하다. 집중과 몰입은 어른도 어렵다. 충동과 산만을 다양한 분야에 즉각적인 관심을 갖는 것으로 봐도 좋다.

알콜은 약간의 창의성을 줄 수 있다. 아이들도 몽상을 통해 창의적이 될 수도 있다. 몽상은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것인데 이를 통해 다양한 문제의 해결성을 볼 수도 있다. 몽상과 산책은 두뇌의 스트레칭이다. 뇌들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개인의 삶이 있는 부모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 자칫 부모의 삶과 아이의 삶이 모두 망가질 수 있다. 완벽하게 살아야할 필요도 없다. 고난을 트라우마로 여기지않고 역경으로 여기자. 부모가 불안하지 않아야 아이가 불안하다. 불안해 하는 것은 선택이다.

뭘 해줄까보다 해주려는 욕구를 관리하라. 아이가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줄 알면 나중에 사회생활에도 좋을 것이다.

혹 아이가 잘못되어도 부모의 잘못이 절대로 아니다. 아이앞에 죄인일 필요가 없다. 잘못되더라도 부서지지 않으면 된다. 큰 고통이 삶을 산산조각 낼 수도 있다는 것은 근원적인 공포이다. 평소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살아가면 결코 삶은 산산조각 나지 않는다. 무너지면 다시 쌓으면 된다. 근본은 절대 다치지 않는다. 양육도 마찬가지이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부모는 아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부모이다. 자기 삶에 충실한 것은 자녀의 방치가 아니다. 삶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관심, 응원 필요할 때의 도움이 가장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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