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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책만 읽는 바보 – 역사속 인물들의 독서 와 나를 성장시키는 독서

책 제목만으로는 독서 만을 많이 하는 것을 우려하는 내용일 것 같았다책만 읽지 말고 읽은 내용을 실천 하라거나, 책 외에 다른 방식으로 지식이나 정보를 습득하라거나 하는 식의.

그러나예상과는 달리, 책만 읽는 바보라 (간서치看書癡)는 소리를 들어도 책을 읽었던 조선 후기 실학자 형암 이덕무를 대표적 좋은 사례로 들며 책을 읽을 것을 당부하는 그야말로 독서 장려 서적이었다.  

형암 이덕무는 책을 읽음을 통해, 굶주림이나 추위, 감기, 근심 등을 잊을 수 있다고 했다는 다소 어안이 벙벙해지는 내용을 포함하기도 했다언제나 책은 마음의 양식이었지, 독서를 통해 직접적으로 굶주림 등의 실질적인, 그야말로 형이 하학적인 문제를 잊을 수 있다는 주장이 있을 줄이야

조선 시인 김득신의 독서

그외에 조선 중기 시인 김득신은 반복적인 독서를 중요하게 여기고 몸소 실천 했는데 사마천의 사기 중 백이전을 일억 일만회를 읽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일억회라니 궁금하여 찾아보니 현대 수치로는 십만회를 일억회로 표기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그래도 십만회라니… 

딸에게 무척 미안한 고승덕 변호사의 합격 수기에 늘상 등장했던 것이 수험서 10회독을 하면 고시를 패스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십회도 백회도 아닌 십만회.. 

그런 탓일지, 훗날 다산 정약용도 김득신을 으뜸가는 독서가로 꼽았다고 한다.

정약용의 독서

다산 정약용. 18년간의 유배생활 동안 목심심서나 경세유표 등 500여권의저술을하기도한별도의수식이필요치않은정약용이가졌던독서에대한당부가특히인상적이었는데그것은

어떠한 책을 읽기에 앞서 문제 의식이나 자신의 주견을 뚜렷이 해야 한다

그냥 읽어내리기만 한다면 일천 편을 읽는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는 내용인데 읽은 후에 책에서 익힌 내용을 되짚어 보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닌 읽기 전에 최대한 자신의 주견을 가지고 독서에 임하라는 당부는 익숙한듯 하면서도 새로운 내용이다.

예습의 중요성은 독서에도 예외가 없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세종의 독서

그외에도 세종도 백독백습이라 하여 여러차례 반복적으로 읽을 것을 독려 하였고, 이례적으로 사가독서제라는 장치를 통해 관리들이 집에서도 독서를 할 것을 장려하였다. 이 제도는 뒤에 성종에 이르러서 본격화 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마치 요즘 교수들이 일정한 주기를 갖고 임하는 연구년 제도와 유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우리의 독서

 한국이 문맹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반면, 4년제 졸업생의 고급 문서 독해력이 2.4%이다.

김두식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세계문학을 읽을 것을 당부하기도 한다. 그의 주장, 이 책의 주장 뿐만 아니라도 독서는 무척 중요할 것이다.

십만회, 억회 반복독서 까진 아니겠지만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다시금 독서에 대한 각오를 다져보는 기회를 남긴다.  

나를 성장시키는 독서

나를 성장시키는 독서법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저 상대나 연사가 하는 말만 곧이 곧대로 듣고 있기보다는 관련 내용을 스스로 정리 요약도 하고 독자 스스로 결론도 내리는 방식으로 독서방법을 진행하자는 것이다.

물론 관련 내용에 대한 질문의 중요성도 놓치지 않고 있다.

어떤이의 강연을 듣고 있다고 하자나는 듣는 입장이다마냥 듣고만 있는 것과 들으며 메모도 하고, 정리 요약하며 다소 애매한 것들에 대한 질문까지 하는 것어떠한 방법을 취하는 것이 효과적인 자세일까는 길게 생각해 볼 필요가 없다.

물론 일반적인 대화도 마찬가지이다대화 중에 메모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최소한 마냥 듣고 있기만 하지는 않는다그래서 어땠어 내지는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질문은 일반적이지고 흔하지 않는가그러나 우리는 유독 독서에 있어서 만큼은 저자의 말이 곧 법이다.

마치 저자의 한마디 한마디를 배우려는 자세로만 듣는것, 그 말대로 고스란히 따르는 것을 어쩌면 독자의 미덕으로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그러지 않는가.

책 읽고 한 자라도 더 배워

이러한 배우려는 자세가, 배우기만 하려는 자세가 되고 아무런 대꾸없는 수동적인 자세로 고착화 되지는 않았을까마치 질문, 비판, 의심 보다는 스승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 암기, 존경을 미덕으로 하는 중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강의실의 풍경처럼 말이다.

독서를 그저 그냥 저자의 생각을 받아만 들이려 하는 것은 강연장에 있거나, 강의실에 앉아 있을 때.. 하다못해 찻집이나 술집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그냥 그저 목석마냥 앉아만 있는 것과 다른 것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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